쓰다 만 것

카테고리 없음 2017. 8. 29. 11:06

 내 세계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


 이 작은 방 안이 내 세계의 전부다. 마주하는 타인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식품배달원, 검침원, 집배원, 사회복지사. 또 누가 있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들 대다수는 나와 타인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조금 특이해서이지, 우리가 특별한 사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사회복지사 정도가 아닐까. 그나마도 그 사람과 나는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사이에 불과하다.


 친구라고 부를 법한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피하자 점차 연락이 오는 일은 없어졌다. 나는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아무와도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아는 그 어떤 사람의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런 것은 나로 하여금 비참함만을 느끼게 했다. 나는 차라리 나를 모르는 타인의 도움을 선택했다. 그게 바로 일주일에 두 번씩 나를 찾아오는 그 사회복지사였다.

 

 사고가 났다.


 비 내리던 겨울날이었다. 겨울같지 않은 높은 기온에 눈이 아닌 차가운 비가 내렸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외식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었다. 첫 월급을 받은 나는 들뜬 상태였고, 그 돈으로 가족들에게 한 턱 쏘기로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조수석에 앉으셨고, 어머니와 동생은 뒷좌석에 앉았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고깃집은 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았다. 차로 고작 십 분 거리였다.


 동생이 우스갯소리로 뒤에 앉아서 하던 말을 기억한다. 이게 웬일이야, 내가 오빠한테 밥을 다 얻어 먹고? 제일 비싼 걸로 시켜야지. 그렇게 조잘거리며 동생은 웃었다. 어머니가 네 오빠 지갑 거덜나겠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내심 흐뭇해하시는게 보였다. 내가 말했다. “야, 네가 양껏 먹으면 내 지갑 다 털려. 이번 달 거지 돼.”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 별 것 아닌 잡담을 하면서 운전을 했다.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있는 동생을 봤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운전 초보도 아니었고, 그 길은 회사에 갈 때마다 다니는 익숙한 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빗길임에도 나는 방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고는 순식간에 났다. 8차선 도로가 마주하고 있는 사거리에서였다. 신호등이 노란 불로 바뀌었고, 속도를 내던 앞 차 브레이크 등이 붉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서 속도를 내고 있던 나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차가 미끄러졌다. 아마 비 때문에 도로가 미끄러웠던 탓일 것이다. 어? 어? 하면서 당황한 나는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아버지가 뭐라고 소리쳤다. 내 이름을 부른 것 같다. 그래도 차는 멈추지 않았고, 되려 바퀴가 제멋대로 돌면서 차는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오던, 노란 신호를 건넌 차와 들이받았다.


 쿵 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엄청난 충격이 몸을 덮쳤다. 퍽 하면서 에어백이 터졌다. 그 차가 우리 차를 침과 동시에 차 문 유리에 나는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시야가 점멸했다. 번쩍거리다가, 까맣다가, 다시 눈 앞이 하얘졌다가 이내 눈 앞이 검게 물들었다. 꽉 죈 안전벨트와 에어백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 헉, 하고 숨을 내뱉었는데 격통이 물밀듯 밀려왔고, 의사들은 내게 약물을 처방했다. 며칠을 꼬박 병원에 있었는지 모른다. 약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몸이 너무 아팠다. 아파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면서 여기가 어디에요? 어눌한 발음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게 제대로 된 언어로 내 입밖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했고 그때는 고통만이 내 머릿속 전부였다. 조금 약 기운이 가시자 내가 왜 이렇게 아플까 고민했고 사고에 생각이 미쳤다. 그제야 겁이 덜컥 났다. 가족들은 어떻게 된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는 묻고싶었지만, 아무도 내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의사들의 목적은 내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곧 보험회사 직원이 왔다. 그게 사고 직후였는지, 사고가 지나고 나서 한참 지난 일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때는 시간 감각이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시야는 마치 성에가 낀 듯 눈 앞이 뿌옇게만 보였고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서 나는 숨을 쉴 때마다 통증에 시달렸다. 이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보험회사 직원은 내 인생에 갑자기 등장해서는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려주었다. 나 빼고 그 차에 타고 있던 전원, 즉 내 가족 모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피가 차게 식는 느낌이었다. 말을 듣는 순간 손끝부터 피가 얼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보험 회사 직원은 계속해서 과실 비율을 언급하며 뭐라고 말을 했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손끝이 차가워서 덜덜 떨리는 와중에 울컥울컥 가슴에서 뭔가 밀고 올라와 호흡이 격해졌다.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숨을 쉬었다. 억, 억 하면서 목에서 소리가 났다. 이게 부러진 갈비뼈가 아픈 것인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아픈 것인지 모른 채 나는 고통스러워했다. 끔찍한 절망이 가슴 속에 들끓었다. 내 가족이 죽었다. 나만 살았다. 모두 죽었다. 거짓말같은 현실이었다. 믿고싶지 않아도 나는 사고의 순간을 기억했다. 그리고 나는 좌절했다. 내가 그 차를 운전했다.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나 때문에 차가 미끄러졌다. 내가 방심해서 사고가 난 것이다. 내 실수가 내 가족을 죽였다.

Posted by Shao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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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전

2016. 12. 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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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下

2016. 6. 22.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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